이제 마지막 남은 특기들을 짚어보자.
고지가 눈 앞에 있다.
1. 교육
교육 특기는 장교후보생들이 입대해서 제일 먼저 접하는 군인들이다.
경남 진주 교육사령부가 본거지라 할 수 있고, 그곳 장교교육대대에서 만나는 중/대위들은 정말 무섭다.
그들은 사정없이 교육생들을 힘들게 한다. 알고 보면 따뜻한 사람들이겠지만 그곳에서는 다르다.
그렇게 빨간 훈육관 모자를 쓴 그들을 보며 교육 특기에 대한 편견을 갖기 쉽지만 교육 장교들은 그런 훈육관 자리뿐만 아니라 일반 행정직 비슷한 업무를 보는 자리로도 많이 보내진다.
훈육관을 제외하고는 사실 교육 특기 역시 정체성이 조금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매년 특기 통합의 대상으로 거론된다. 부대 전입 장병 교육이나 민간 위탁 교육을 나가는 장병들에 대한 업무라든지 약간 '교육'의 냄새를 가진 행정 업무를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교육 특기만의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장기를 희망하는 자원들에게 교육 특기는 그리 많은 기회를 주지 않는다. 초급 장교를 뽑을 때도 그리 많이 뽑지는 않지만, 장기 티오가 조금 적은 편이다. 선생님들이나 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이 우선 선발 대상이다.
장교교육대대에서 좋은 훈육관을 만나면 교육 특기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되기도 한다. 만약 3년만 복무하는 의무복무 남군들이나 여군들이라면 3년 빡세게 진주에서 훈육관으로 살아보는 것도 정말정말 좋은 인생의 밑거름이 될 거라 생각한다. 장교대, 부사관교육대대, 신병교육대대 등 여러 자리가 있다.
훈육관은 정말 매력적이다.
나도 해보고 싶었던 것이기도 하다. 정말 많은 사람들 앞에서 교장선생님 훈화 같은 말을 해야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을 독려하며 때로는 거칠게 다루며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전체를 이끌어 나가야 하는 위치다.
다만 체력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교육생들을 거칠게 다뤄야하는 것이 힘들 수도 있다. 화도 많이 내야 하고, 소리도 많이 질러야 하니까. 성격이 변할 수도 있다... 그리고 수도권거주자라면 진주는 정말 땅끝 저기 저 지구 속 맨틀에 있는 기분이 들 것이다... 훈육관이 아니라도 교육 특기는 그들의 고향 진주에 남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도 명심하시길.
2. 정보
우리는 '정보'와 '정보통신'을 구분해야 한다. 미군들은 '정보' 특기를 'Intelligence'라고 한다. (내가 알아들은 게 맞다면) 그러니까 군사 기밀과 가장 밀접한 업무를 한다고 볼 수 있겠다.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관리하고 그래서 궁극적으로 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이랄까. 물론 조종사들 중에서도 이러한 업무를 하는 직책이 있지만, 이들은 정말 대단히 어려운 일을 한다.
자, 이들도 굳이 나누자면 두 파트 정도로 크게 나눠지는데. 하나는 수집 쪽이고 하나는 보안(비밀관리) 쪽이다. 수집은 이 특기의 꽃인 부대에서 주로 일한다. 지금 내가 있는 기지(부대가 여러 개 모여 있다)에 그 부대가 있다. 다른 하나인 보안담당은 우리가 업무하면서 다루는 각종 군사기밀, 비밀들을 관리하고 시설 부분에서도 가면 안 되는 통제 구역을 관리한다든지 이런 빡센 일을 한다.
이 특기는 정말 정말 일이 힘들다. 누구 하나 쉽게 일하는 걸 본 적이 없다.... 특기 교육도 다른 특기들과 달리 멀리 따로 다른 교육대에 가서 받는다. 공부도 미친듯이 많이 해야 한다. 알아야만 일을 할 수 있고 알기 위해 시간 투자는 당연히 필요하다. 소위 때부터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공부하는 동기들을 봐왔다. 그들은 힘들어 보였다. 게다가 어떤 부서에서는 항공통제 특기처럼 크루근무(3교대)를 한다. 나는 그들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 수도 없다. 근데 좀 멋있다. 진짜 핵심인물들 같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것은 내용, 즉 알맹이고, 내가 하는 것은 껍데기, 서식 같은 점이라는 데에서 둘의 차이를 크게 느낀다. (인사행정 특기들이여, 여러분들을 평가절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튼 멋있고 겁나 힘들다. 장기 복무자 선발 확률도 그만큼 높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위 여러 명 뽑아서 힘들게 가르치는 것보다 그 과정을 이미 겪은 대위 한 명이 제 몫을 해줄 때 더 큰 효과가 나오기 때문이랄까.
3. 헌병
군대의 경찰. 우리가 드나드는 부대/기지 문을 지키고 법을 준수하지 않는 자를 처벌하는 일을 한다.
그 때 모 미군기지 앞에서 한국 민간인이 미군에게 수갑이 채워진 채 끌려갔던 문제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그 일로 미군 대표가 사과도 하고. 또 SOFA 문제로 시끄러웠다. 그 때 수갑을 채웠던 미군 역시 헌병이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도 기지 주변을 순찰하며 제 나름의 업무에 충실했던 것일 거라 예상된다. 그게 도가 지나친 월권이었던 게 문제랄까..
헌병은 군기가 매우 강하다. 탄약을 다루는 관계로 조금이라도 정신줄을 놓으면 인명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휘관을 하고 싶다면. 휘하에 병력을 거느리고 싶다면. 헌병으로 가라. 하지만 솔직히 평시에 우리 같은 초급장교들이 하는 업무들은 약간.. 병정놀이의 느낌이 있다. (비하 발언 아니다..) 내가 만났던 많은 헌병 특기 장교들이 '허세'가 심했다. (귀납적 추리에 의거한 결론이지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 근데 쓰고 보니 내가 꽤나 헌병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무서워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뭐, 고시공부하기에 좋다든가라고 소문이 나 있을텐데 난 꼭 그렇진 않다고 생각한다. 밤낮이 뒤바뀌어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람이 밤낮이 바뀌면 적응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시간이 많이 흘러도 잘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밤 중에는 사실 별 일이 벌어지지는 않고 자리를 지키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그것을 노리고 공부를 목적으로 헌병 특기를 받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이 특기 중에서도 헌병중대장은 부대 행사에 동원되는 업무를 많이 하는 등, 바쁘다. 작전과에서 근무라도 하게 되는 경우에는..... 게다가 특임중대장! 휴....
기지 내에 과속하는 차량들도 단속해야 하고, 출입문에서 들고 나가는 인원들 조치해야 하고.. 할 일이 많다. 심지어 사고치고 오는 애들 영창에서 감시도 해야 한다. 공군에서도 아직까지 병사들 사이에 위계질서가 강해 악폐습이 숨어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래도 다양한 병사들을 만나고 군인 같은 삶을 살며 경험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4. 의무행정 / 법무
의사는 군의관으로 가고, 약사들을 뽑는 자리다. 아마 약사들은 이 블로그를 몰라도 잘 알아서 갈 것이다.
판사/검사/변호사는 법무 특기를 받을 것이다. 아마 법관들은 이 블로그를 몰라도 잘 알아서 갈 것이다.
5. 간호
나 때도 간호 특기를 따로 뽑았는지 모르겠다. 간호 특기는 간호사관학교 출신들로만 채우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닌가보다. 아마 특기 특성상 특별전형으로 대부분 채우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밖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근무 여건이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신분 보장도 되고.. 간호학 졸업자들은 충분히 고려해 볼만한 직업이다.
6. 기타
들어는 봤나, 김우.(나는 맞춤법을 몰라서 이렇게 쓴 게 아닙니다.) 그들은 위에 말한 모든 특기들의 잘잘못을 평가하는 특수 집단이다. 이렇게 뽑지 않고 현역들 중에서 일부 뽑아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민간에 비유하자면 감사원이나 국정원의 느낌이다. 그들은 사복을 입고 다니고 장교도 뽑긴 하지만 부사관들이 굉장히 많긴 하다. 그들은 공군 소속을 벗어나게 돼 경례 구호도 '필승'이 아닌 '충성'이라고 한다. 사실 사람들이 뒤통수친다고 좀 싫어하기 때문에 욕먹으며 다른 사람 잡아넣고 이런 게 적성에 안 맞으면 그냥 처음부터 아예 생각하지 않는 게 좋겠다.
사실 그들이 이 블로그에 올 수도 있고 이 글을 읽을 수도 있단 생각에 나는 약간 두렵다. (아직은 뭐.. 그럴 만큼 활성화도 안 되어 있지만서도..)
내가 언젠가 말도 없이 너무 오랫동안 블로그를 비우거나 이게 갑자기 폐쇄되면........ 어떡하지...
또는 내가 갑자기......
만약 내가 전역하는 날까지 블로그가 건재하다면 자유로운 신분이 되었을 때 좀 더 노골적인 썰을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기까지가 공군장교 특기에 대한 일개 여군 중위의 개인적이고 편협한 시선이었다.
특기는 군생활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기도 하지만
단기장교들에게는 특기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배속지이다.
내가 배속지까지 비교분석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3년 간 한 곳에서만 근무를 했던지라 특기에 대한 것보다도 더 무지한 상태에서 글을 쓰게 될 것 같아서 망설여진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이 직무, 직책, 부서 같은 거지만.... 이건 제 운이다. 정말로.
뭐니뭐니해도 '사람'이 답인 건, 조금만 살아 본 사람이라면 다들 알지 않을까.
그나저나 오는 6월 8일이 필기 전형일이라니, 필기시험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좀 찾아보고 포스팅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