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장교가 육군이나 해군에 비해 갖고 있는 도드라지는 장점은!
'오지'나 '전방'에서 근무할 확률이 현저히 낮다는 점이다.
특히나 성남, 수원, 오산 등의 수도권 비행장을 비롯해
광주나 대구처럼 지방이라도 대도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지역에서 근무가 가능하다.
물론..
방공포대나 관제사이트라는 무서운 복병이 기다리고 있지만
여군 장교 입장에서만 말하자면
그런 오지에 갈 확률은 굉장히 낮다. (사실 크게 봤을 때 이것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어디가 됐든 공군 장교만 되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시켜만 주십쇼' 정신의 입대 희망자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사치로 들릴 수도 있겠다.
공군 장교에 합격하는 방법은 지난 글에 상세히 올렸으니 참고하면 되겠다.
2013/04/04 - [여자 구닌] - # 001. 공군 장교가 되고 싶다면 1
이번에 할 이야기는 입대가 확정된 후! 그리고 입대 전! 그 사이間 준비할 점이다.
육군은 여군끼리 따로 뽑고 따로 모아서 훈련을 받지만 공군은 다르다.
내가 훈련을 받을 당시 우리 기수(124기)는 인원이 꽤나 많았다.
대략 480명 가운데 여군은 처음에 52명이 입대했고 그 중 48명이 임관했다.
4명은 어디 갔냐고?
자진귀향.
[명사] 훈련에 도태되거나 중간에 마음이 바뀐 후보생들이 더 늦기 전에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친절한 제도.
엄마..... 나야...... (부모님이 따뜻하게 반겨주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그 동안의 시간을 보상받을 수는 없다. 심지어 한 명이 돌아가고 난 다음 날부터 남은 이들은 더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돌아갈까?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지만 오늘은 일단 체력 문제에 집중하겠다.
다른 문제들은 다음 글, 훈련 기간의 글에서 소개하겠다.
냉정하게 말해서 여군 장교후보생들은 군에 대한 개념 이해 자체가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군은커녕 군대, 국방, 군인, 장교 이런 것들에 대한 이해가 없었고 그것은 훈련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내 동기 최모 중위는 장교 후보생은 신체 훈련은 거의 받지 않는 줄 알았다고 했다. 장교니까 그냥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시킬 줄 알았다고. 무슨 손자병법이라도 공부하는 줄 알았나보지.
나는 그냥 막연하게만 생각했다. 뭐 그냥 좀 힘들겠지, 했다.
그러나 그런 안일한 생각은 입대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훈련에는 도움이 안 된다.
(입대에 왜 도움이 되냐고? 아무 생각 없어야 즐겁게 아무렇지도 않게 입대할 수 있으니까.)
닥치면 다 할 것 같지만, 나는 당연히 52명 중 4명이 아니라 48명에 속할 것 같지만, 막상 들어가면 내 체력이 못 버티는 경우도 정말 있긴 있다.
방법은 딱 하나다.
뛰어라.
발목에 팔목에 모래주머니 차고 뛰란 말까진 안 한다. 그냥 실내에서든 밖에서든 뛰어라.
처음에는 3km로 시작하지만 후반부에는 6~8km를 군장 메고 뛰기도 하고 아무리 공군이라도 몇십 킬로를 행군도 한다. 유격장, 화생방훈련장, 사격장도 다 뛰어 올라가야 한다. 나 혼자 슬로슬로퀵퀵 페이스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남자들 페이스에 맞춰서 뛰어야 하고 대열에서 뒤쳐지면 다음 기회는 없다.
근력 운동은 바라지도 않는다. 일단 뛰는 것에 익숙해질 생각부터 해라.
모르긴 몰라도 여기 이 글 읽고 있는 현대여성 여러분 중에 뜀박질이 생활인 사람 많지 않을 거다. 나는 악으로 깡으로 버티긴 했지만 의외로 낙오가 많다. 잘 뛰던 사람들도 뙤약볕에 뛰고 나면 혀물고 쓰러지기도 하는 게 기본군사훈련단에서의 흔한 광경이다. 뛰는 게 익숙지 않다가 갑자기 많은 양의 달리기를 하면 발목이나 무릎, 고관절에도 부상을 입기 쉽다. 그렇게 들어오자마자 목발 짚고 다니는 동기들도 여럿이었다. 알고 있겠지만, 군대에서 아프면 서러움 뿐이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동기들도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차다.
뛰는 게 자신 있고 다른 것을 병행할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독서를 권한다.
나는 15주 동안 책을 접할 수 없다는 게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후반부에는 조금 볼 수 있었지만) 대단한 독서광은 아니지만 세상과 단절되어 지낸다는 게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읽고 싶었던 책, 보고 싶었던 영화, 갖가지 문화생활을 즐기고 들어오길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오길..
나의 훈련일지의 절반은 음식 얘기..인 것 같다.
식탐에 지배당한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끌려오는 것도 아니고 하나의 직업으로(또는 경험으로) 본인이 선택해서 들어오는 만큼 여군에 대한 기대는 높은 편이다. 여군이 못하면 5배로 눈에 띄고 또 그만큼 여군이 잘하면 좋은 쪽으로 눈에 띈다. 훈련단에서의 성적이 자신의 군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한 것 같지만 특기와 배속지 결정에 관련이 있는 만큼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훈련단에서 성장해 나가는 자신을 보며 다른 대한민국 여자들은 해보지 않은 알 수 없는 성취감을 누리는 특권이 주어진다.
대한민국 남자들에 대한 미안함. 공감. 고마움. 또 그것을 함께 해나간다는 자신감.
비록 '니들은 오고 싶어서 온 거잖아'라는 손가락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것까지 생각하기에 훈련은 너무 고되다..
하고 싶다는 열의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입대가 확정된 후! 그리고 입대 전! 그 사이間 준비할 가장 중요한 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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