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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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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7일 토요일 / 날씨 : 추움

 

 

내가 좋아하는 미역국이 나와서 신이 났었는데....

 

 

- 주요 생활 내용

점심 때 미역국. 근데 내 앞에서 먹은 1-4 백ㅇㅇ 동기는 미역국에 바지락이 넘쳤다. (낮에 짬날 때 미리 맨 앞 두 줄을 써놨다.) 까먹기 전에 꼭 미리 써놓고 싶었다. 난 하나 밖에 못 받았는데... 오늘은 ㅇㅇ이 생일인데 내가 여기 와서 첫 낙오를 경험하고 말았네. 솔직히 일부러 본 때를 보여주려고 말처럼 뛰어 많은 애들을 낙오시킨 것 같다. 이제 이렇게 빨리 뛰는 날이 많아질 것 같긴 하다만... 걱정이다. 군기 소대장님이 싫긴 하지만 오늘 그 분이 한 말이 틀린 건 없었다. 그래서 더 속이 상했다.

실패하는 것이 두렵다. 아마 앞으로 몇 번 더 낙오를 경험하겠지.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하니까 당연하다. 그 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나 자신을 다독여야 할텐데.. 아무리 나 스스로가 혼자 해결해야 한다지만.. 아버지도 보고 싶고, 애들도 보고 싶고.. 아버지의 채찍질은 늘 무섭지만 사랑이 느껴지기에 괜찮은데. 어머니도 잘 계시겠지? 우리 작은아버지, 어머니.. 이모들. 다 보고 싶다. 그 사람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버틴다.

 

- 건강상태

발목

 

- 동기생 관찰

정선ㅇ : 짱 잘 뜀. 부럽다.

박송ㅇ : 온몸 근육통

민경ㅇ : 군기가 바짝 들었는데 눈물이 많음.

 

posted by 주할미

2010년 3월 26일 금요일 / 날씨 : 추워 너무 추워

 

- 주요 생활 내용

내일은 여기서 제대로 맞는 첫 주말이다. ㅇㅇ이 생일이네. 여군 동기들 중에는 3월 생일자가 없는 것 같은데. 4월 초에는 몇 명 있는 것 같다. 까먹지 말고 챙겨줘야 할텐데 여기서는 시간이 정신 없이... 가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날짜 개념이 없어서 걱정이다.

아침에 군기 소대장님이 기상 잘 못 깨워서 정말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오늘은 동기부여도 조금 밖에 안 받은 것 같아 좋다. 운동한다 생각하고 하니까 괜찮다. 빨리 에너자이저로 변신하고 싶다. 지치지 않는 심장!

 

 

 이렇게 뛰란 말이야!!!

 

전투구보. 낙오자 동기를 끌고 뛰려다가 되려 나까지 죽을 뻔했다. 결국 자진귀향 한다더라, 또. 다들 이제 적응해가는 가운데 이렇게 또 누군가는 가는구나.

그래도 늦게까지 잘 수 있어서 좀 늦게까지 얘기 좀 하다 자는데 너무 피곤하다. 오늘 받았던 오전 정훈 교육 때문에 정훈 특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재밌게 좀 하지.. 군대는 재미는 없어야만 하는 곳인가? 자기소개 시간도 재밌었긴 하지만... 아직 영 적응이 힘들다.

 

- 건강상태

좋지는 않음 결코.

 

- 동기생 관찰

윤정ㅇ : 아주 멀쩡하다고 함.

서현ㅇ : 손이 찢어지고 갈라지는 게 심함.

김지ㅇ : 나랑 상태 비슷함.

 

 

 

posted by 주할미

2010년 3월 25일 목요일 / 날씨 : 비 비 비

 

 

훈련일지 우측 상단에는 민간인 시절 증명사진을 붙인다.

 

소대장이 원망스러웠던 그 날.

아마 소대장이 훈련일지를 읽기 때문에 더 원망을 해봤던 것 같은데

도리어 자진귀향을 권하는 듯한 소대장의 댓글.

 

 

- 주요 생활 내용

사는 게 왜 이러냐. 버겁다. 소대장님은 우리한테 왜 이럴까. 왜. 왜. 나는 오늘도 동기부여를 받으며 마음을추스렸다.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라고 생각했다.

군가 배우는 것도 즐거웠고, 도수체조는 아직 어렵지만 할 만하다. 재미있게 수업해주시는 훈육관님 말고 일반학 교관님들 덕에 웃기도 하지만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우리 소대장님은 여군이 많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그래. 하는 사람도 마음이 좋진 않겠지- 라고 이해하려고 해봐도 몸이 괴로우니까 정신적 스트레스도 쌓인다. 아 미치겠다 정말. 내일은 전투구보란다. 초심이고 나발이고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여기 왜 왔니......

 

- 건강상태

허리가 삐끗한 것처럼 소리를 지를 때도 통증이 있다. 다리는 무겁고.

 

- 동기생 관찰

허은ㅇ : 실수로 인한 스트레스 증폭

손민ㅇ : 아직 할만해 보임. 작지만 체력이 좋음.

최유ㅇ : 억울하게 받은 동기부여로 사기 저하. 버틸만은 해보임.

 

 

posted by 주할미

2010년 3월 24일 수요일 / 날씨 : 적당함

 

- 주요 생활 내용

벌써 불침번을 두 번이나 섰다. 운도 없게 4번입에 걸려 2시까지 했다. 죽으라는 거지. 괴롭다. 이거 쓰고 빨래도 하고 자야한다. 근데 나 말고도 늦은 시각까지 못 자는 동기들이 많은 걸 보고 놀랐다.

총기를 받았다. 3xx5xx 3x9x3x 인가? 헷갈린다. 아까 써놨는데 까먹었다. 정말.. 바보가 되나요... 총 들고 뛰는데 하늘이 돌더라. 하아. 금요일에 전투구보라는데 걱정이다. 온 몸이 다 땡기고 아픈데.. 큰일이다.

이거 채우기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밖에서는 글쓰기 참 좋아했는데.

오전 학과들은 재밌었다. 그래도 잠시나마 쉬게 해주시려는 분들이 고마웠다. 민ㅇ혜, 권현ㅇ 중위님, 박형ㅇ 대위님.

아, 오늘은 칭찬 들었다. 발표할 때도 어색한 말투로 대성박력하려니 생각만큼 정리는 안됐지만 그래도 여기 와서 처음! 칭찬 받아서 좋다. 체력만 받쳐준다면 슬슬 적응할 것도 같다. 근데 그 사실이 좋으면서도 슬프고 쓸쓸하네.

얼른 편지나 받아보고 싶다. 그리운 사람들이 눈에 밟힌다.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제 이름은 몽쉐리입니다.

 

 

- 건강상태

근육통

 

- 동기생 관찰

허은ㅇ : 변비. 발냄새. 구보 힘겨움.

김지ㅇ : 귀염둥이

서지ㅇ : 구보 때 넘어짐.

 

 

posted by 주할미

2010년 3월 23일 화요일 / 날씨 : 비온 뒤 황사, 건조

 

- 주요 생활 내용

내 눈이 고양이 눈이면 좋겠다. 밤에 완전소등 후에도 다 보일 수 있게...

할일은 많고 적응할 게 쌓여 있는데 시간이 부족하다. 아직도 이틀 밖에 안 되었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렵다.

계속 책임 추궁의 연속이다. 오늘도 용무신청 때문에 계속 벌받고 달리기 하다가 근육이 놀라서 순간 끊어진 건 아닌가 싶었다. 동기들이 그래도 한 마디씩 물어봐주는 게 고마웠다.

군기 소대장님께 혼난 것은 인정할 만 했다. 똑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말아야겠다. 부르면 무조건 이름부터 댄다! 긴장도 하지 말고 몸이 익히도록 얼른 적응해야 하는데.. 아직도 화요일이다 아직도!! 기본기가 얼른 몸에 뱄으면 좋겠다.

동기부여 받는 건 힘들지만 아직은 할 만하다. 쫄지 않으려면 배운 것을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데 아직 쉽지 않다. 할 수 있겠지.

그래도 이렇게 글이라도 쓸 수 있으니 답답한 마음이 좀 낫다. 어제부터 계속 눈물이 마르지 않지만 버텨야 한다. 체력도 군인정신도 완벽한 군인이 되리라. 어차피 되기로 한 거라면 잘 해야 한다. 힘내자.

 

 

 

- 건강상태

피부문제 / 근육통

 

- 동기생 관찰

박아ㅇ : 피부 아픔. 친절해서 정이 감.

허은ㅇ : 대성박력 스트레스. 말을 툭툭 뱉지만 안 무서움.

박송ㅇ : 근육통. 은근 재밌음.

 

 

 

 

posted by 주할미

공군이 타군에 비해 훈련이 약하다고들 생각하나본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공군 장교는 14주(이제 12주)의 훈련이 끝나고 임관해서 자대로 배치받으면

ORI, 기지방어 훈련 외에는 정기적인 훈련이 없다.

종종 화생방 훈련 등이 있기는 하지만 간부들은 여러 가지 부대 사정상 훈련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헌병 특기를 제외하면 유격 훈련을 다시 받는 일도 없고, 행군도 안 한다.

 

그 래 서

임관 전 훈련을 매우 빡세게 받는다고 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도 실제 전쟁이 나면 지휘를 해야하기 때문에 잘 알아야 하니)

강하게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라고 들었다.

 

 

금지항목 뭐 하나 걸리면 죽는 줄 알았다. 그래서 꼭 지켰다.

후배들 중에는 휴대폰 소지하고 있다가 퇴소 당한 친구도 있다지..?

 

 

용무를 허락 받지 못하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화장실에 가는 것은 '용변허락 받겠습니다'라고 한다.

 

 

예비후보생의 (행복했던) 일주일이 지나가고. 드디어 진짜 입단이다.

입단식이 끝난 날 저녁, 충성관 강당에 후보생 480명이 모여 숨을 죽이고 있다.

빨간 모자를 쓴 소대장들이 안 보인다. 뭐지.. 뭘까.. 불안하다.

마이크를 잡고 있던 소대장이 말한다.

 

"지금부터 소대를 발표하겠다."

 

그 전에 있었던 소대장 소개 시간에 '저 인간만은 안 걸리길' 소망했던 소대장들이 있었는데..

결전의 시간이다. 과연 내 운명은..

1중대 1소대장이 나와서 자신의 소대원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다.

이름이 호명된 후보생들은 큰 소리로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60명 쯤 되자 호명이 멈춘다.

1중대 1소대장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연병장으로 다 튀어나와!!"

이름 순으로 (그리고 여군은 따로) 분류돼 있던 가소대에서 이빨 빠진 자리가 한 두개씩 보인다.

그리고 1중대 2소대장이 나온다. 여군이다.

내 이름이 불린다.... 우리 소대도 밖으로 튀어나간다.

다행히 우리 소대는 별 다른 일이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전달사항만 전달했고 우리를 기 죽이거나 진압하려는 위압적인 자세로 나오지 않았다.

재수가 좋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다....

2중대 4소대까지 모두 분류가 끝났다.

2중대 4소대는 첫날부터 녹초가 됐다. 아주 많은 일을 겪은 모양이었다.

 

죽음의 3주, 우리의 특내가 시작되었다.

 

특내 이야기는 아무래도 생생함을 위해 내 훈련일지를 직접 보면서 써야겠다.

 

 

번외) 질문 맛보기.

1. 장교 후보생도 직각식사를 하나요?

- 아니오. 직각식사란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상방으로 90도 올리고 자신의 입 높이에서 멈춘 후 직선으로 그 숟가락을 가져와 입에 넣는 것을 말하는가본데, 그런 건 하지 않는다.

다만 '플레이트 수평'이라는 것이 있다. 급식판이 움직이지 않도록 왼손을(왼손잡이는 오른손을) 쫙 펴서 급식판의 모서리를 받친다. 이 때 엄지와 나머지 손은 벌어진 상태이고 나머지 네 손가락은 붙인다. (선서! 할 때 손 모양에서 엄지만 90도로 벌리고 식판 왼쪽 아래 끝 모서리에 대고 있는 것이다. 손에 힘주고 누르면 식판이 엎어지고 그렇다고 팔꿈치나 손목 등을 식탁에 기대서도 안된다. 그게 좀 힘들다. 그거 때문에 지적도 많이 받는다...

 

2. 구보는 얼마나 힘든가요?

- 구보만 잘 하면 웬만한 훈련은 다 잘할 수 있다. 모든 훈련의 기초는 뛰는 것이다. 사격을 하러 가도 사격장 구경을 해야한다. 억지로. 뛰어서. 우리 때 신 모 중위님이 드넓은 사격장을 계속 뛰게 하고 못 뛴다고 오리걸음 시키고 그랬던 게 생각난다. 화생방 훈련장에도 뛰어 올라가야 하고 올라가면 또 그 앞을 뛰어야 한다. 유격 훈련장, 총검술, 제식.. 뭐 나중에 되면 이게 내가 뛰는 건지 땅이 도는 건지 모르게 뛰게 된다.

그리고 아침마다 모닝 구보를 뛴다. 가볍게 2~3km 정도?.... 아무튼 3보 이상은 다 구보다. 구보구보구보... 재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더 큰 고통을 맛볼 것이다.

 

3. 유격은 진짜사나이처럼 똑같이 하나요?

- 유격, 유격, 유격대. 유격대. 공군은 '보라매'다. 조금만 몸이 처진다 싶으면 놓치지 않고 열외시킨다.

"260번 보라매 뒤로 나와!" "네! 260번 보라매 열외!"

그리고 같은 동작을 수백번 다시 시킨다. 잘할 때 까지... 흑흑.

줄 잡고 건너기, 외줄타기, 목봉체조, 등등 많은 유격 종목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한다. 체조? 물론 빡세다. 그렇다고 미리 유격체조 익혀갈 것까지는 없다. 못하면 그냥 더 많이 하면 된다.

 

 

 

 

posted by 주할미

 

진짜사나이 샘 해밍턴의 유격훈련 받는 장면을 보고

처음엔 혼자 미친듯이 웃다가

나중에는 자꾸 그 때 생각이 나서 눈물이... 엉엉

유격에 대해 나중에 자세히 포스팅 할 날이 오겠지만

미리 겁 좀 주자면..

내 동기 하나는 줄 잡고 건너기 하다가

눈썹 위가 찢어져 훈련 도중 실려가 바늘로 꼬맸다.. 그 때 생각하면... 웃음이 나겠냐고.

 

그래서 시작하는 훈련 포스팅.

 

 

2010년 3월 15일 진주 공군교육사령부.

그 날은 비가 내렸다. 추적추적.

그리고 480여명의 동기들이 울며 웃으며 충성관 강당으로 들어갔다.

나는 부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씩씩하게 당당히 아무 생각 없이 그곳에 합류했다.

저 멀리 다른 여군이 하나 보였다. 단발머리의 그녀도 용감해보였다.

 

아버지는 하나뿐인 딸을 신나게 입대시키고는

올라가는 길에 운전을 하며 그렇게 서럽게 울었다고 했다.

나의 아버지는 애석하게도 방위 출신이라 군대가 어떤 곳인지 몰랐다.

나는 지금도 그러한 아버지의 무지가 용기가 되어 사랑하는 나를 그 훈련단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 모든 군필자들은 나를 말렸었다...

 

 

처음엔 아무것도 안 시켰다. 우리를 존중해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세면장 청소 상태가 불량하던 어느 날 우리는 모두 샤워장에 누웠지.

좌로 굴러 우로 굴러로 세면장 바닥을 온 몸으로 닦아주었지...

 

 

이제보니 난 참으로 섬세한 여자였다.

이렇게 자세하게 잘 적어놓다니.

그리고 가입단이 끝나며 내가 입고 있던 모든 옷가지들을 집으로 보내는 상자에 저 수첩도 같이 들어갔지.

사제품은 실오라기 하나도 용납되지 않기에.

 

정말 착잡해하며 쌌던 그 택배 박스에 마지막에 급하게 저 수첩 한장을 찢어 휘갈겼다.

'나는 괜찮으니 걱정하지마!'

 

그것은 부모님을 위한 효녀의 하얀 거짓말.... 이 아니고

그 때까진 정말 괜찮았다.

가입단... 폭풍전야가 끝나가고 있었다.

 

2탄은 다음에 이어서...

 

 

 

posted by 주할미

군 장교가 육군이나 해군에 비해 갖고 있는 도드라지는 장점은!

'오지'나 '전방'에서 근무할 확률이 현저히 낮다는 점이다.

특히나 성남, 수원, 오산 등의 수도권 비행장을 비롯해

광주나 대구처럼 지방이라도 대도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지역에서 근무가 가능하다.

 

물론..

방공포대나 관제사이트라는 무서운 복병이 기다리고 있지만

여군 장교 입장에서만 말하자면

그런 오지에 갈 확률은 굉장히 낮다. (사실 크게 봤을 때 이것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어디가 됐든 공군 장교만 되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시켜만 주십쇼' 정신의 입대 희망자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사치로 들릴 수도 있겠다.

공군 장교에 합격하는 방법은 지난 글에 상세히 올렸으니 참고하면 되겠다.

 

2013/04/04 - [여자 구닌] - # 001. 공군 장교가 되고 싶다면 1

 

이번에 할 이야기는 입대가 확정된 후! 그리고 입대 전! 그 사이間 준비할 점이다.

 

육군은 여군끼리 따로 뽑고 따로 모아서 훈련을 받지만 공군은 다르다.

내가 훈련을 받을 당시 우리 기수(124기)는 인원이 꽤나 많았다.

대략 480명 가운데 여군은 처음에 52명이 입대했고 그 중 48명이 임관했다.

4명은 어디 갔냐고?

 

자진귀향.

[명사] 훈련에 도태되거나 중간에 마음이 바뀐 후보생들이 더 늦기 전에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친절한 제도.

 

 

엄마..... 나야...... (부모님이 따뜻하게 반겨주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그 동안의 시간을 보상받을 수는 없다. 심지어 한 명이 돌아가고 난 다음 날부터 남은 이들은 더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돌아갈까?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지만 오늘은 일단 체력 문제에 집중하겠다.

다른 문제들은 다음 글, 훈련 기간의 글에서 소개하겠다.

 

냉정하게 말해서 여군 장교후보생들은 군에 대한 개념 이해 자체가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군은커녕 군대, 국방, 군인, 장교 이런 것들에 대한 이해가 없었고 그것은 훈련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내 동기 최모 중위는 장교 후보생은 신체 훈련은 거의 받지 않는 줄 알았다고 했다. 장교니까 그냥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시킬 줄 알았다고. 무슨 손자병법이라도 공부하는 줄 알았나보지.

나는 그냥 막연하게만 생각했다. 뭐 그냥 좀 힘들겠지, 했다.

그러나 그런 안일한 생각은 입대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훈련에는 도움이 안 된다.

(입대에 왜 도움이 되냐고? 아무 생각 없어야 즐겁게 아무렇지도 않게 입대할 수 있으니까.)

닥치면 다 할 것 같지만, 나는 당연히 52명 중 4명이 아니라 48명에 속할 것 같지만, 막상 들어가면 내 체력이 못 버티는 경우도 정말 있긴 있다.

 

방법은 딱 하나다.

뛰어라.

 

 

 

발목에 팔목에 모래주머니 차고 뛰란 말까진 안 한다. 그냥 실내에서든 밖에서든 뛰어라.

처음에는 3km로 시작하지만 후반부에는 6~8km를 군장 메고 뛰기도 하고 아무리 공군이라도 몇십 킬로를 행군도 한다. 유격장, 화생방훈련장, 사격장도 다 뛰어 올라가야 한다. 나 혼자 슬로슬로퀵퀵 페이스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남자들 페이스에 맞춰서 뛰어야 하고 대열에서 뒤쳐지면 다음 기회는 없다.

근력 운동은 바라지도 않는다. 일단 뛰는 것에 익숙해질 생각부터 해라.

모르긴 몰라도 여기 이 글 읽고 있는 현대여성 여러분 중에 뜀박질이 생활인 사람 많지 않을 거다. 나는 악으로 깡으로 버티긴 했지만 의외로 낙오가 많다. 잘 뛰던 사람들도 뙤약볕에 뛰고 나면 혀물고 쓰러지기도 하는 게 기본군사훈련단에서의 흔한 광경이다. 뛰는 게 익숙지 않다가 갑자기 많은 양의 달리기를 하면 발목이나 무릎, 고관절에도 부상을 입기 쉽다. 그렇게 들어오자마자 목발 짚고 다니는 동기들도 여럿이었다. 알고 있겠지만, 군대에서 아프면 서러움 뿐이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동기들도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차다.

 

뛰는 게 자신 있고 다른 것을 병행할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독서를 권한다.

나는 15주 동안 책을 접할 수 없다는 게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후반부에는 조금 볼 수 있었지만) 대단한 독서광은 아니지만 세상과 단절되어 지낸다는 게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읽고 싶었던 책, 보고 싶었던 영화, 갖가지 문화생활을 즐기고 들어오길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오길..

나의 훈련일지의 절반은 음식 얘기..인 것 같다.

식탐에 지배당한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끌려오는 것도 아니고 하나의 직업으로(또는 경험으로) 본인이 선택해서 들어오는 만큼 여군에 대한 기대는 높은 편이다. 여군이 못하면 5배로 눈에 띄고 또 그만큼 여군이 잘하면 좋은 쪽으로 눈에 띈다. 훈련단에서의 성적이 자신의 군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한 것 같지만 특기와 배속지 결정에 관련이 있는 만큼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훈련단에서 성장해 나가는 자신을 보며 다른 대한민국 여자들은 해보지 않은 알 수 없는 성취감을 누리는 특권이 주어진다.

대한민국 남자들에 대한 미안함. 공감. 고마움. 또 그것을 함께 해나간다는 자신감.

비록 '니들은 오고 싶어서 온 거잖아'라는 손가락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것까지 생각하기에 훈련은 너무 고되다..

 

하고 싶다는 열의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입대가 확정된 후! 그리고 입대 전! 그 사이間 준비할 가장 중요한 점 아닐까.

 

 

posted by 주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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